[한국일보] <커버스토리> 이길호 한국에듀테크산업협회장, “교육 시장 접근 어려워…정책 뒷받침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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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인공지능(AI)이 학습 수준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문제 풀이로 실력을 올려주는 맞춤형 학습이 가능하다면 우리의 학습 환경은 어떻게 바뀔까. 점수로만 성취도를 평가하는 것이 아닌, 빅데이터로 학생의 성향, 역량 등 다방면을 분석할 수 있다면 어떨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을 떠올리면 이런 장면이 떠오를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도록 하는 게 바로 에듀테크(Edutech)다.
에듀테크란 교육(Education)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차세대 교육을 의미한다. 교육에 과학기술이 접목되면서 인터넷 기반의 전자기기로 이뤄지는 이러닝(E-Learning) 서비스가 활성화되거나 IT 기기를 활용하는 수업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교실을 실현하기란 요원하다. 에듀테크 개념이 도입된 이후 몇 년 사이 국내에서 에듀테크 스타트업 기업이 생겨나는 등 변화가 일고 있지만, 아직 에듀테크의 명확한 정의와 범위조차 규정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에듀테크가 교육 현장에 자리 잡으려면 어떠한 점이 보완돼야 하고, 어떤 노력이 수반돼야 할까. 9월 18일 서울 강남구 타임교육 사무실에서 이길호 한국에듀테크산업협회장을 만나 그 해법을 들어봤다.
하드웨어부터 서비스까지…폭넓은 정의 필요
에듀테크는 통상 두 가지로 인식된다. 좁게는 스타트업 등이 응용 소프트웨어를 통해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조금 넓게는 교육용 기자재 등 하드웨어는 물론 기술을 기반으로 한 교육 서비스나 교육 철학 등 방법론적인 측면까지 아우르는 것. 이 회장은 에듀테크의 정의를 최대한 폭넓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회장은 “하드웨어나 교육용 기자재부터 시작해서 교육서비스 등까지 에듀테크에 포함시켜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어 있고, 인식이 충분히 공유돼있지 않다”며 “(정의에 따라) 산업 규모를 확정 짓고, 이에 맞는 정책이 뒤따라오는 만큼 정의가 중요한데, 협회에서는 가능한 한 넓게 해석하자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에듀테크는 크게 네 가지 분야로 나뉜다. 하드웨어, 솔루션, 콘텐츠 그리고 서비스다. 하드웨어는 교육 현장에서 볼 수 있는 전자 칠판이나 통신장비 등 IT 기기를 주로 일컫는다. 솔루션은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요구 사항을 처리해주는 일종의 플랫폼을 말한다. 서비스는 콘텐츠 등을 학교나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행위다. 대표적인 서비스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인터넷 강의다.
에듀테크, 중요하지만 현실 적용 어려워
다소 생소한 개념이긴 하지만, 에듀테크는 교육 분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에듀테크를 통해 대도시와 낙후지역 사이에 보다 균형 잡힌 교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낙후지역의 교사 인력이나 인프라가 발달되도록 더 지원해 대도시와의 균형을 맞춰나가야 한다”며 “낙후지역을 위해서라도 기술을 개발해 유능한 교사가 해당 지역에 가지 않더라도 낙후지역 학생들에게 사이버 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우리나라는 이미 일정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정작 에듀테크를 교육 현장에 적용하는 건 쉽지 않다. 교육용 프로그램 등 디지털 콘텐츠를 제공하려고 해도, 콘텐츠 제공 주체가 사기업이기 때문에 공교육 시장에 접근하기 쉽지 않다. 또 우리나라 교육 특성상 교육부의 심의를 일일이 거쳐야 하는 점도 공교육 시장 접근을 어렵게 하는 요소로 꼽힌다. 이 회장은 “교육의 공공성을 추구하는 기조 때문에 영리 목적을 지닌 기업이 교육 분야에 침투하는 데에 거부감이 있다”며 “교육부가 콘텐츠를 일일이 심의하고, 심지어 콘텐츠를 직접 만들고 있지 않나”고 토로했다.
그렇다고 사교육 시장이 열려있는 것 또한 아니다. 이 회장은 “사교육 시장은 에듀테크 콘텐츠에 지불의사가 거의 없다”며 “강사에게 투자하면 즉시 효과가 있지만, 교육용 프로그램이나 콘텐츠는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경우가 별로 없어 사교육 시장은 주로 강사에게 투자한다”고 말했다.
‘에듀테크 선진국’ 영국, 미국처럼 되려면
선진국은 어떨까. 영국과 미국은 에듀테크 분야가 특히 발달해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디지털콘텐츠나 교육용 소프트웨어 활용이 보편화돼있다. 이 회장은 “선진국은 온라인으로 학생들의 성적과 진도, 출석 등을 관리해주는 학습관리시스템(LMS, Learning Management System)을 넘어 조직의 계획ㆍ운영 및 통제를 위한 정보를 조직화한 경영정보시스템(MIS, Management Information System) 단계로 진입했다”며 “중국과 일본도 에듀테크 분야에선 우리나라보다 다소 앞서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은 원래 정부의 전폭적 지원이 없었는데, 최근 정부부처에서 지원을 약속하는 등 정책이 전향적으로 바뀌었다”고 덧붙였다.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 에듀테크 시장이 활성화되려면 정책이나 지원 등 정부와 국회 차원의 노력이 절실하다.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대표 발의한 ‘이러닝(전자학습) 산업 발전 및 이러닝 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이 대표적이다. 이 개정안은 ‘에듀테크 산업 지원법’이라고도 불린다.
2004년에 ‘이러닝 산업 발전법’이 제정된 이후 관련법이 구시대적인 수준에 머물면서 AI,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15년 만에 전면개정 수준으로 법이 탈바꿈되면서 법령 범위가 전자학습에서 에듀테크로 확장됐다. 이 회장은 “기존 법령은 산업 범위나, 정부 및 각 기관의 역할 등 지금의 현실과 맞는 게 없었다”며 “법안이 발의되면서 (에듀테크에 대한) 관심도 생기고, 예산안이 반영되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에듀테크 기업 차원의 협업 노력도 필요하다. 국내 에듀테크 기업은 정보통신 기업과 전통적인 교육기업, 이러닝 기업, 스타트업 등으로 분류된다. 태생이 다른 만큼 각자 장단점도 분명하다. 가령, 스타트업은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가 적은 반면 전통적인 교육기업은 오프라인 콘텐츠가 풍부하다는 점이다. 이 회장은 “서로 다른 기업 사이에 협업체제가 강화돼야 한다”며 “협업이 강화되면 교육기업의 오프라인 콘텐츠를 스타트업이 활용하고, 중견기업이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방식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출처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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